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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증을 없애야 건강해진다고 굳게 믿었습니다. 가족 중에 비염을 달고 있는 사람이 있어 "몸속 염증을 싹 제거하면 낫겠지"라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런데 전문의에게서 "염증을 100% 없애면 그 사람 당장 죽는다"는 말을 들은 순간, 제가 10년 넘게 가져온 상식이 완전히 뒤집혔습니다. 염증은 적이 아니라, 제 몸을 지키는 전사였습니다.

착한 염증: 제 몸이 싸우고 있다는 증거
염증이 나쁘다는 말은 틀렸습니다. 정확히는, 절반만 맞습니다.
저도 오랫동안 나의 가족이 비염 때문에 환절기마다 고생했고, 아토피 때문에 피부가 긁혀 나가는 걸 반복하면서 "염증 반응을 꺼버릴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면역 시스템을 제대로 이해하고 나니, 그 생각 자체가 위험한 발상이었습니다.
우리 몸에는 크게 두 가지 면역 시스템이 있습니다. 선천 면역과 후천 면역입니다. 선천 면역(Innate Immunity)이란 태어날 때부터 작동하는 방어 시스템으로, 대식세포(Macrophage)와 호중구(Neutrophil) 같은 면역 세포들이 침입자를 보자마자 즉각 공격합니다. 여기서 대식세포란 몸속 이물질을 직접 잡아먹는 청소부 면역 세포를 의미합니다. 관상 보고 싸대기 날리는 방식이라고 하면 이해가 쉬운데, 실제로 의학적으로도 "패턴 인식"이라는 개념으로 설명됩니다.
이 선천 면역의 결과물이 바로 염증입니다. 모기에 물려 붓고 가려운 것, 무릎이 까져 고름이 잡히는 것, 전부 염증 반응입니다. 특히 고름은 박테리아를 죽이고 전사한 호중구의 시체입니다. 제 몸이 싸워서 이겼다는 표식인 것이죠. 이걸 억지로 없애려 하면 전쟁터의 소방관을 강제로 퇴장시키는 것과 같습니다.
후천 면역(Adaptive Immunity)은 림프구, 즉 B세포와 T세포가 담당합니다. 여기서 B세포란 항체(Antibody)를 만들어 혈액 속을 순찰하는 세포이고, T세포란 특정 적을 직접 찾아가 제거하는 세포입니다. 쉽게 말해 저격수(스나이퍼)처럼 주변 조직을 건드리지 않고 정밀 타격합니다. 백신이 바로 이 후천 면역을 미리 훈련시키는 원리입니다(출처: 질병관리청).
"면역은 올려야 하고 염증은 없애야 한다"는 말이 왜 말이 안 되는지, 이제 제 경험상 체감이 됩니다. 면역을 올리면 염증도 함께 강해집니다. 둘은 같은 시스템의 양면이니까요.
- 선천 면역: 대식세포·호중구가 즉각 공격 → 염증 반응 발생
- 후천 면역: B세포·T세포가 정밀 타격 → 염증 없이 처리
- 백신: 후천 면역을 미리 훈련시켜 콜래터럴 데미지(부수적 피해) 없이 방어
- 비염·아토피·가려움증 모두 선천 면역의 염증 반응 결과물
만성 염증과 수면 : 제가 불면증을 다시 보게 된 이유
착한 염증이 나쁘게 돌변하는 순간이 있습니다. 적이 계속, 조금씩, 끊임없이 밀려올 때입니다.
대표적인 예가 동맥경화증입니다. 혈관벽 틈으로 LDL 콜레스테롤이 조금씩 스며들면, 거기 살고 있는 대식세포가 "이놈 여기가 뭐라고"하며 잡아먹기 시작합니다. 처음엔 잘 처리됩니다. 그런데 콜레스테롤이 계속 들어오면 대식세포가 감당을 못 하고 결국 터져버립니다. 이 잔해가 혈관벽 안에 굳으면서 동맥경화증(Atherosclerosis)이 됩니다. 여기서 동맥경화증이란 혈관벽 안에 지방 찌꺼기가 쌓여 혈관이 좁아지고 딱딱해지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의도는 착했지만 결과가 처참한 사례입니다.
같은 원리로 지방간, 만성 간염, 더 나아가 간경화까지 이어질 수 있습니다. 치매도 마찬가지입니다. 뇌 신경세포가 일하다 생긴 단백질 찌꺼기, 아밀로이드(Amyloid)가 잘못 처리되면 쌓이기 시작하고, 이를 처리하려는 면역 세포의 과잉 반응이 뇌 세포를 서서히 망가뜨립니다. 아밀로이드란 정상적으로 접히지 못한 단백질 덩어리로, 물에 녹지 않아 뇌 조직에 누적되는 것이 알츠하이머 치매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됩니다(출처: 미국 국립노화연구소(NIA)).
이 지점에서 저는 불면증이 얼마나 무서운 문제인지 다시 실감했습니다. 잠을 잘 자야 건강하다는 말은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습니다. 그런데 솔직히, 불면증이 있는 저로서는 "그러니까 어쩌라고"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그런데 글림프 시스템(Glymphatic System)에 대해 알게 된 후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글림프 시스템이란 뇌가 깊은 수면 상태일 때만 활성화되는 뇌 청소 시스템을 의미합니다. 뇌척수액이 뇌 조직 사이사이를 흘러 노폐물을 씻어내는 구조인데, 이 청소부는 깊은 수면(Non-REM 3~4단계) 때만 문을 열고 들어옵니다. 꿈을 많이 꾸는 얕은 잠에서는 작동하지 않습니다.
제가 직접 경험해봤는데, 쪽잠을 나눠 자는 날과 7시간을 내리 잔 날의 다음 날 컨디션 차이는 체감상 엄청납니다. 개운함의 차이가 단순히 피로 회복 수준이 아니라, 머릿속이 맑고 탁한 차이라고 느껴졌습니다. 아마도 그 청소부가 제대로 일을 했느냐, 중간에 쫓겨났느냐의 차이였겠지 싶습니다.
만성 염증을 확인하는 혈액 검사 지표로는 당화혈색소(HbA1c)가 있습니다. 당화혈색소란 최근 2~3개월간의 평균 혈당 수준을 반영하는 수치로, 원래 당뇨 진단에 쓰이지만 몸의 대사 염증 상태를 가늠하는 데에도 유용합니다. 일반적으로 5.7% 이하가 정상이며, 6.0%를 넘기 시작하면 만성 염증이나 대사 이상의 적신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 수치를 건강검진 결과지에서 그냥 넘기기 쉬운데, 6.0~6.5% 구간이 나왔다면 당뇨가 아니더라도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염증을 없애면 건강해지는 거 아닌가요?
A. 일반적으로 염증은 나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 인식은 절반만 맞습니다. 염증은 몸이 외부 침입자와 싸우는 반응의 결과물입니다. 이를 완전히 없애면 면역 자체가 무너지기 때문에, "줄여야 할 만성 염증"과 "허용해야 할 급성 염증"을 구분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Q. 노니, 타트체리 같은 항염 영양제 먹으면 만성 염증에 효과 있나요?
A. 그런 의견도 있지만, 실제로 따져보니 이 성분들은 약효를 증명하는 임상시험을 거치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안전성만 인정받아 판매 허가를 받은 것이지, 효능이 입증된 것과는 다릅니다. 여러 종류를 동시에 복용하면 약물 상호작용(DDI)이 예측 불가능하게 증폭될 수 있어 오히려 주의가 필요합니다.
Q. 당화혈색소가 6.0%를 넘으면 당뇨인가요?
A. 당뇨 진단 기준은 6.5% 이상입니다. 6.0~6.5% 구간은 당뇨는 아니지만 대사 기능 이상과 만성 염증의 적신호로 해석하는 것이 맞습니다. 건강검진 결과지에서 이 수치가 나왔는데 의사에게 별 말을 못 들었다면, 직접 물어보거나 생활 습관을 점검해보는 것이 좋습니다.
Q. 잠을 오래 자면 만성 염증이 줄어드나요?
A. 단순히 오래 자는 것보다 깊은 수면(Non-REM 3~4단계)의 질이 중요합니다. 글림프 시스템은 이 깊은 수면 구간에만 활성화되어 뇌 노폐물을 청소하기 때문입니다. 꿈을 많이 꾸는 얕은 잠으로 8시간을 자는 것보다, 끊기지 않는 깊은 잠 7시간이 훨씬 낫습니다. 저도 이 차이를 직접 느끼고 나서야 수면을 진지하게 관리하기 시작했습니다.
결론
비염과 아토피 환자를 보면서 "염증만 없애면 해결된다"고 믿어온 시간이 길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면역 시스템의 구조를 이해하고 나니, 싸워야 할 대상은 염증 자체가 아니라 염증이 만성화되는 환경이었습니다. 과식, 고혈당, 흡연, 수면 부족, 이 모든 것들이 착한 소방관을 쉬지 못하게 몰아붙이는 원인이었습니다.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 중에 가장 효과 대비 손실이 없는 건 수면 관리입니다. 불면증이 있는 저로서는 "그냥 자면 되잖아"라는 말이 얼마나 허탈하게 들리는지 압니다. 그래도 쪽잠을 여러 번 나눠 자는 습관을 조금씩 바꿔보는 것, 그리고 건강검진에서 당화혈색소(HbA1c) 수치를 그냥 넘기지 않는 것, 이 두 가지부터 시작해보는 것이 현실적인 방향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