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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저는 아버지가 술을 못 끊으시는 걸 보면서도 "뭐, 적당히 드시면 괜찮겠지"라고 생각했습니다. 담배는 10년 넘게 끊으셨는데 술만큼은 절대 못 끊겠다고 하시거든요. 그러다 응급의학과 전문의가 실제 응급실에서 겪은 사례들을 접하고 나서야 술이 몸에 어떤 짓을 하는지 제대로 이해하게 됐습니다. 생각보다 훨씬 구체적이고, 생각보다 훨씬 무서웠습니다.

급성알코올중독, 응급실에서 보면 달라 보입니다
제가 대학 다닐 때만 해도 선배가 따라주는 술은 무조건 마시는 게 거의 불문율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게 얼마나 위험한 문화였는지 싶지만, 당시엔 그냥 분위기에 휩쓸렸죠. 실제로 그런 강요 음주로 사망 사례가 생기면서 대학 내 음주 문화가 많이 바뀌고 있는 건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급성알코올중독(acute alcohol intoxication)이란, 단시간에 다량의 알코올이 혈중으로 흡수되어 뇌 기능이 급격히 저하되는 상태를 말합니다. 쉽게 말해 뇌가 알코올에 마비되는 것인데, 심해지면 호흡을 조절하는 뇌 부위까지 기능을 잃어 숨을 못 쉬게 됩니다. 양주를 원샷으로 마셨다가 사망하는 사례가 실제로 발생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게 하나 더 있습니다. 우리 몸은 술을 너무 많이 마시면 구토 반응을 일으킵니다. 뇌가 위장 속 독성 물질을 감지하고 빨리 꺼내라는 신호를 보내는 것이죠. 그런데 막상 토한다고 해서 혈중 에탄올이 크게 줄지는 않습니다. 아침에 토하는 게 속은 시원할지 몰라도 이미 혈액 속으로 흡수된 알코올은 그대로입니다. 의식을 잃은 상태에서 구토를 하면 흡인성 폐렴으로 이어질 수도 있어서, 주변에서 그냥 자게 두는 게 능사는 아닙니다.
- 의식을 잃은 채 혼자 두면 구토 후 흡인 위험이 생깁니다
- 혈중 알코올 농도가 최고점에 달해도 간이 서서히 분해하면서 몇 시간 후 의식이 돌아옵니다
- 상태가 심각하다면 지켜보지 말고 응급실로 데려가야 합니다
췌장염, 알코올 중독자가 병원에 오게 만드는 유일한 병
응급실 단골 환자 이야기가 흥미로웠습니다. 술을 끊지 못하는 분들은 보통 병원 자체를 기피하는 경향이 강한데, 췌장염만큼은 예외라고 합니다. 너무 아파서 안 올 수가 없다는 거죠. 저도 그 이유를 듣고 나서야 췌장염이 왜 그렇게 무서운 병인지 이해했습니다.
췌장염(pancreatitis)이란 췌장에서 분비되는 소화액이 제대로 배출되지 못하고 고여서 췌장 자체를 녹이는 염증 상태입니다. 알코올이 소화액 배출구를 수축시키는데, 이렇게 소화액이 저류되면 췌장 조직 자체가 자가 소화, 즉 스스로를 소화시키는 상황이 됩니다. 모든 장기 염증 중 가장 극심한 통증을 유발한다고 알려져 있으며, 복막염으로 번지면 생명을 위협합니다.
제 아버지처럼 건강검진 결과를 보고 나서야 뭔가를 끊는 분들이 계시는데, 담배는 끊으셨지만 술은 "이 정도는 괜찮아"라는 생각으로 이어가시더군요. 그런데 췌장염을 한 번 겪은 분들은 그 생각이 완전히 바뀐다고 합니다. 아파서 순순히 치료를 따르게 된다는 게 씁쓸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그게 회복의 첫 계기가 되기도 한다고 하니 역설적입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알코올을 1군 발암물질로 분류하고 있으며, 구강암·식도암·간암·대장암 등 거의 모든 소화기계 암의 발생 위험을 유의미하게 높인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출처: WHO Alcohol Fact Sheet). 췌장염뿐 아니라 만성적인 음주가 암 위험으로 직결된다는 의미입니다.
절주, 끊는 게 답이 아니라 조절이 관건입니다
솔직히 저는 술을 완전히 끊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친목을 위해 어느 정도 역할이 있다고 느끼고, 취중진담이라는 말처럼 진지한 대화가 필요한 자리에서 술이 긴장을 풀어주는 역할을 하기도 하거든요. 문제는 그 적정선을 넘는 순간입니다.
알코올성 케톤산증(alcoholic ketoacidosis)이라는 게 있습니다. 알코올이 체내에서 대사될 때 산성 물질인 케톤체를 다량 생성하는데, 이게 혈액을 산성화시켜 심정지까지 유발할 수 있는 상태입니다. 며칠 내내 밥도 안 먹고 술만 마시는 분들에게서 주로 나타납니다. 제 경험상, 이런 사례를 접하고 나서야 "술 마실 때 뭐라도 먹어야 한다"는 말이 단순한 조언이 아니라 실제 의학적 이유가 있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응급실 사례 중 인상 깊었던 게 하나 있습니다. 20년간 술을 한 잔도 안 드신 50대 여성분이 맥주 한 캔에 응급실을 오셨는데, 알코올 수치는 정상에 가까웠지만 남편의 비밀을 알게 된 충격으로 감정적으로 무너진 상태였다는 겁니다. 반면 소주 여섯 병을 마시고 한 시간 만에 멀쩡히 걸어 나간 분도 있었고요. 주량이라는 게 결국 개인차가 크고, 자신의 한계를 정확히 아는 게 핵심이라는 걸 다시 느꼈습니다.
그러나 얼마나 잘 마셔도 알코올 자체가 세포를 손상시키는 독성 물질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소독제로도 쓰이는 에탄올을 몸속에 넣는 거니까요. 뇌를 직접 적시며 인지 기능을 저하시키고, 장기적으로 치매 발생 위험을 높입니다. 절주(節酒)란 단순히 양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몸 상태와 한계를 인지하고 사고가 나지 않을 수준에서 마시는 태도를 갖추는 것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술 마시고 토하면 알코올이 빠지나요?
A. 실제로는 거의 빠지지 않습니다. 구토는 위장 속 내용물을 내보내는 것인데, 알코올은 이미 대부분 혈액으로 흡수된 상태라 토한다고 해서 혈중 알코올 농도가 유의미하게 떨어지지 않습니다. 특히 아침에 토하는 경우엔 이미 에탄올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아 토하는 것 자체가 몸에 부담만 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Q. 급성알코올중독 상태에서 그냥 재워도 되나요?
A. 혼자 두는 건 위험할 수 있습니다. 의식을 잃은 상태에서 구토가 나오면 기도로 흡인되어 흡인성 폐렴이나 질식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옆에서 지켜보되 호흡이 불규칙하거나 깨어나지 않는다면 즉시 응급실로 데려가야 합니다.
Q. 췌장염이 술 때문에 생기는 건가요?
A. 만성적인 과음이 췌장염의 주요 원인 중 하나입니다. 알코올이 췌장 소화액의 배출 경로를 수축시켜 소화액이 고이게 되고, 이 소화액이 췌장 자체를 손상시키는 염증을 일으킵니다. 담석에 의한 췌장염도 있지만, 음주량이 많은 분들에게서 알코올성 췌장염이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Q. 알코올성 케톤산증이 뭔가요, 밥 먹으면 괜찮나요?
A. 알코올성 케톤산증은 음식 섭취 없이 장기간 음주할 때 혈액이 산성화되는 상태입니다. 심하면 심정지까지 이어질 수 있어 단순한 숙취와 다릅니다. 평소 음주 시 영양 섭취를 병행하는 것이 도움이 되지만, 이미 증상이 나타난 경우라면 수액 및 전해질 보충 등 병원 치료가 필요합니다.
Q. 술을 완전히 끊어야 건강에 좋은 건가요?
A. WHO는 알코올을 1군 발암물질로 분류하고 있어 "안전한 음주량"은 없다고 봅니다. 다만 현실적으로 사회적 음주를 완전히 배제하기 어렵다면, 자신의 주량을 정확히 파악하고 사고가 나지 않을 수준에서 절제하는 것이 현실적인 접근입니다. 몸에 이상 신호가 오기 전에 조절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결론
아버지를 보면서 가장 안타까운 건, 몸이 망가지는 속도보다 "괜찮겠지"라는 생각이 더 빠르다는 겁니다. 급성알코올중독, 췌장염, 알코올성 케톤산증, 이 세 가지만 봐도 술이 몸 어디에 어떤 방식으로 타격을 주는지 충분히 그려집니다. 뇌, 췌장, 혈액, 결국 모든 곳입니다.
저도 술을 완전히 안 마시는 편은 아닙니다. 다만 이 사례들을 제대로 이해하고 나서는 내 몸이 감당할 수 있는 선이 어딘지를 좀 더 진지하게 생각하게 됐습니다. 몸이 망가지고, 관계가 망가지기 전에 스스로 절주를 실천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해답이라고 봅니다. 한 번쯤 자신의 음주 패턴을 돌아보는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